<뉴요커>에 실린 단편소설 



외국 잡지를 읽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르다. 광고만 보는 사람도 있고 서평만 읽는 사람도 있고

레이아웃만 보는 사람도 있고, 최신 정보 칼럼을 샅샅이 뒤지는 사람도 있으며, 핀업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한때 미국판 <플레이보이>의 인생 상담란만 읽었었다. 나라가 워낙 넓다 보니 정말이지 다양한 고민과 의문이 있어

무척 재미있다. 같은 종류의 고민이라도 일본인의 경우와는 조금씩 포인트가 다르다.

  그러나 잡지를 읽는 기쁨 가운데 하나는, 뭐니뭐니 해도 뛰어난 단편소설과 만나는 것이다. 신작 목차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이름을 발견하고 반가워하기도 하고, 들어본 적도 없는 무명 작가의 작품을 읽고 기분이 좋아지기도 한다.

미국에서도 최근 소설, 특히 단편은 시원찮은 작품이 많아서 예전의 <에스콰이어>나 <플레이보이>처럼 신간을 받아볼

때마다 두근거리던 느낌 같은 건 없어졌지만, 그래도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뭐하지만) 일본 잡지를 읽을 때보다는

재미있는 소설을 접할 수 있다.

 최근작으로는 <뉴요커>에 실린 레이먼드 카버의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와 도널드 바셀미의 '낙뢰', 이 두 작품이

추천할 만하다. 카버의 자굼은 대부분 그렇듯, 이번 작품 역시 금세 빠져들게 되는 훌륭한 단편이다.

  '낙뢰'는 <포커스>라는 잡지(<피플>의 패러디 잡지다)에 실린 것인데 '벼락을 맞고도 살아남은 사람들'을 인터뷰한

프리랜서 작가들의 이야기다. 대단한 내용은 아니지만 독특한 발상과 이야기 전개 방법만으로도 독자들이 손에서 책을

놓지 못하게 한다. 마지막 마무리도 과연 바셀미답게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다. 이런 작품은 단편집에 실려 있는 작품

중의 하나로 읽는 것보다는 잡지에 실린 것을 따로 읽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이것을 엘러리 퀸 식으로 '독자에 대한 도전'

이라고 하는데, 처음부터 수법을 밝힌 상태에서 어디까지 독자를 끌어들일 수 있나 하는 기술을 보여주는 것 같다.

  '내가 전화를 걸고 있는 장소'는 '낙뢰'와는 달리 꾸밈없는 담담한 문체의 소설이다. 그러나 카버의 문장은 한순간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앞으로 돌진해 나간다. 알코올 중독으로 요양소에 들어가 있는 주인공이 다른 청년 환자와 마음이 통하게 

된다는 이야기인데, 소재가 어두운 것치고는 감상적으로 흐르지 않아 좋다. 술술 읽히면서도 읽고 난 후에 마음에 무언가 남아 있다.

훌륭한 단편이란 바로 이런 것을 말한다.


(1982.7.20)



Posted by Swann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