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한 풍경 고양이처럼 우울한 풍경이다쓸쓸한 풍선은 곧바로 올라가고리넨을 입은 인물이 드문드문 있는 것이 아닌가.이미 아주 오랫동안아무도 이런 부둣가를 생각하지도 않아.그리하여 기중기가 멍하니 있는 갑으로부터여러 가지 각양각색의 생물 의식이 사라져갔다.게다가 범선에는 면이 선적되고그것이 앞바다 쪽에서 뭉게뭉게 생각에 빠져 있는 것이 아닌가.무어라 말할 수조차도 없다소름 끼쳐 닭살 돋는 듯한 추억뿐이다.아아 신이여 이제 되돌릴 방법도 없다그리하여 이런 병든 회상 때문에 언제나 유아처럼 울고 있겠지. 게으른 달력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이제 우울한 벚꽃도 하얗게 썩어버렸다마차는 덜컹덜컹 먼 곳을 달리고바다도 시골도 고요한 공기 속에서 잠자고 있다어쩌면 이다지도 게으른 날일까운명은 연달아 어두워져 가고쓸쓸한 ..
"작업 속에서 내가 나를 구원하지 않는다면......".그러나 어째서 문학 창작이 그를 구원할 수있단 말인가? 스스로가 용해되어 버리고, 자기에게나 타인에게나 자기를 상실해버리는 바로 이 끔찍한 상태 속에서 카프카는 글을 써야만 하는 의무, 그 중력의 핵심을 발견한 것 같다. 그 깊이는 파괴의 자리에 가장 큰 창작의 가능성을 대치시켜 싹트게 한다. 놀라운 전환이다. 이 전환을 통해 희망은 언제나 가장 큰 절망과 같다. 이 경험으로부터 그는 절대 의심치 않는 믿음을 이끌어내게 되며, 그 이후로는 이 믿음을 자발적으로 전혀 위태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하여 카프카의 젊은 시절에 글쓰기 작업은 심리적 구원(아직 정신적 구원은 아니다)의 한 방편과 같은 것이 된다. 또한 글쓰기 작업은 '단어 하나하나가 자기..
나의 생애는 태어나기 전의 긴 망설임이다. 예술은 진리의 주변을 날고 있다. 그러나 몸을 태울 짓을 하지 않으리라는 강한 의도를 가지고서이다.예술의 능력은 이제까지는 그렇게 눈에 띄는 일이 없었을 듯한 빛의 발산을 힘있게 받아낼 수 있는 한,장소를 어두운 허공에서 찾아낸다는 점에 있을 것이다. 인생은 무엇으로 그것이 사람의 마음을 이탈시키는지, 그것에 대해 생각할 수도 없게 만들고 있는끊임없는 마음의 이탈이다. 악은 월부로 지불할 수는 없다...... 그런데도 사람은 항상 그렇게 하려고 애쓴다. 사고를 할 수 있는 시기부터, 그 밖의 모든 것은 대수롭지 않다고 하는, 정신적인 생존권의 보다 심오한 우수를 품게 된다. 아름다운 추억이란 슬픔이 섞이면 더욱더 달콤한 법이다. 우리는 신의 머리 속에 싹트는 허..
날이 저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보금자리를 찾아가지만, 내겐 돌아갈 집이 없다.거리에 이렇게 많은 집들이 즐비하게 서있는데, 내 집이 한 채도 없는 건 왜일까?....... 하고수없이 되새긴 의문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나는 집들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를 천천히 걷고 있다. 전봇대에 기대어 소변을 보는데, 그곳에 마침 새끼줄 자투리가 떨어져 있어서 난 목을 매고 싶어졌다.새끼줄은 곁눈질로 내 목을 노려보면서, 형제여, 내 안에 쉬거라 하고 손짓했다. 정말 나도 쉬고 싶다.하지만 쉴 수가 없다. 난 새끼줄과 형제가 아니며, 게다가 아직 왜 내 집이 없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밤은 매일 찾아온다. 밤이 오면 쉬어야만 한다. 쉬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래서 11시경 좀 마음이 가라앉자 사무실 쪽으로 걸어갔다. 그는 천천히 영화관 앞에 모여 있는 군중을 어깨로 헤치며 걸었다.그는 좁은 길 위를 비치고 있는 별을 바라보았다.네온으로 별빛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이 저녁 지금 비행하고 있는 나의 두 대의 우편선 때문에 나는 온 하늘에 책임이 있는 것이다.저 별은 이 군중 속에서 나를 찾고 있고 나를 발견하는 신호다. 그래서 난 지금 이곳에서 낯설고조금 외로운 것이다.' 어떤 음악의 한 소절이 그의 머리에 다시 떠올랐다. 엊저녁 친구들과 함께 들은어느 소나타의 몇 음절이었다. 그의 친구들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저런 음악은 우리에게도 당신에게도 듣기 싫은 것이지만 당신은 그렇다고 고백하지 않을 뿐이오.""글쎄......"라고 그는 대답했었다. 오늘 저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