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이 저물고 있었다. 사람들은 서둘러 보금자리를 찾아가지만, 내겐 돌아갈 집이 없다.

거리에 이렇게 많은 집들이 즐비하게 서있는데, 내 집이 한 채도 없는 건 왜일까?....... 하고

수없이 되새긴 의문을 다시 되풀이하면서, 나는 집들 사이의 좁은 틈바구니를 천천히 걷고 있다.

 전봇대에 기대어 소변을 보는데, 그곳에 마침 새끼줄 자투리가 떨어져 있어서 난 목을 매고 싶어졌다.

새끼줄은 곁눈질로 내 목을 노려보면서, 형제여, 내 안에 쉬거라 하고 손짓했다. 정말 나도 쉬고 싶다.

하지만 쉴 수가 없다. 난 새끼줄과 형제가 아니며, 게다가 아직 왜 내 집이 없는지 납득할 만한 이유를 찾지 못한 것이다.

 밤은 매일 찾아온다. 밤이 오면 쉬어야만 한다. 쉬기 위해서는 집이 필요하다.

 문득 한 생각이 떠올랐다. 어쩌면 난 뭔가 중대한 착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고. 집이 없는 게 아니라 단순히 

잊어버리고 만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야. 예를 들면...... 말야, 우연히 지나는 길에 어느 한 집 앞에서

발을 멈추고, 이게 내 집이 아닐까 하고 생각할 수도 있다. 물론 다른 집과 비교해서 특별히 그럴만한 가능성을 암시하는

특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건 어느 집에 대해서나 마찬가지이며, 또 그것은 내 집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는 아무런 증거도

될 수 없다. 용기를 내어 자, 문을 두들겨 보자.

 다행히도 반쯤 열린 창으로 친절해 보이는 여자가 내다보며 웃었다. 희망의 기운이 심장 가까이 스며들어,

내 심장은 평평하게 넓어져서 깃발이 되어 펄럭이고 있다. 나도 웃으며 신사답게 인사를 했다.

 "잠깐 말씀 좀 여쭙겠는데요, 여기가 제 집이 아닌가요?"

여자의 얼굴이 갑자기 굳어졌다.

"어머, 댁은 누구신가요?"

 난 설명을 하려고 했지만 그만 말문이 막혔다. 뭐라 설명해야 좋을지 모르겠다. 내가 누구라는 것이 지금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걸 그녀에게 어떻게 납득시켜야만 할까? 난 다소 자포자기적인 기분으로,

"어쨌든 여기가 제 집이 아니라면, 그걸 증명해 주셨으면 합니다."

"어머머......"

그녀의 얼굴이 겁에 질렸다. 그게 내 신경을 건드린다.

"증거가 없다면, 제 집이라고 생각해도 괜찮겠군요."

"하지만 여긴 내 집이에요."

"그게 어쨌다는 건가요? 당신 집이라고 해서 내 집이 아니라고는 할 수 없습니다. 그렇죠!"

대답 대신 여자의 얼굴이 벽으로 변하여 창문을 가로막았다. 아, 이게 바로 여자의 웃는 얼굴의 정체인 것이다.

누군가의 소유라는 것은 내 소유가 아니라고 하는 알아들을 수 없는 논리를 갖다대는 정체가 바로 언제나 그랬듯이

이러한 식의 변신이다.

 하지만 왜...... 왜 모든 것이 누군가의 것이며 내 것은 아닌 것일까? 아니, 내 것이 아니더라도 최소한 누구의 소유도

아닌 것이 하나쯤 있어도 괜찮지 않을까. 또 나는 중대한 착각을 하고 말았다. 공사장이나 재료창고에 있는 도관이 

내 집이라고. 그러나 그것들은 이미 누군가의 소유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며, 이윽고 누군가의 소유가 되기 위해 

내 의지나 관심과는 무관하게 그곳에서부터 사라지고 말았다. 혹은 명백히 내 집이 아닌 것으로 변형되고 말았다.

 그럼 공원의 벤치는 어떤가. 물론 좋지. 만일 곤봉을 든 남자가 와서 내쫓지만 않는다면....... 그것이 정말로 내 집일 것이다.

확실히 이건 모두의 것이며 누구의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말한다. 

 "이봐, 일어나. 여긴 모두의 것이고, 누구의 것도 아냐. 하물며 네 것일 리가 없어. 자, 빨리 가란 말이다.

그것이 싫으면 법률의 문을 통해 지하 감옥으로 가든가. 그 외의 장소에서 발을 멈추면 그곳이 어디든지 간에

그것만으로도 넌 죄를 짓게 되는 거야."

 유랑하는 유대인이란 그렇다면 날 두고 한 말인가?

 날이 저물고 있다. 난 계속 걷고 있다.

 집...... 사라지지도 않고 변형되지도 않고, 지면에 서서 움직이지 않는 집들. 그들 사이의 어느 것 하나 

정해진 얼굴을 갖지 않고 계속 변해만 가는 균열...... 길. 비 오는 날에는 솔처럼 일어나고,

눈 오는 날에는 차바퀴 자국 폭만큼 좁아지고, 바람 부는 날에는 벨트처럼 흐르는 길. 난 계속 걷고 있다.

내 집이 없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목을 맬 수도 없다.

 이게, 누구야. 내 발에 휘감기는 게? 목을 멜 새끼줄이라면, 그리 성급하게 굴지 마라.

그렇게 보채지 말라. 아니 그게 아닌데. 이건 탄력 있는 명주실이군. 집어 당겨보니 그 끄트머리가 구두의 해진 틈 속에서

끊임없이 주르르 풀려 나온다. 이건 참 묘하다는 생각에 이끌려 끌어당기자 더욱 기묘한 일이 생겼다.

점차 몸이 한쪽으로 기울어 더 이상 지면과 직각으로 몸을 지탱할 수 없게 되었다. 지축이 기울고 인력의 방향이 바뀐 것일까?

 탁 소리를 내며 구두가 발에서 벗겨져 지면에 떨어지자, 난 사태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축이 뒤흔들린 게 아니라

내 한 쪽 발이 짧아진 것이었다. 실을 잡아당김에 따라 내 발이 점점 짧아져 가고 있었다.  닳아 떨어진 윗저고리 팔꿈치가

터지듯이 내 발이 풀려나가고 있다. 그 실은 수세미 섬유처럼 분해된 내 발이었던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한 걸음도 걸을 수가 없다. 망연자실하여 내내 서 있자, 이번에는 손안에서 명주실로 변형된 발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 스르르 기어 나와서는 전혀 내 손을 빌리지도 않고 저절로 풀려나가 뱀처럼 몸을 휘감기 

시작했다. 왼쪽 발이 전부 풀려 버리자, 실은 자연히 오른쪽 발로 옮겨졌다. 실은 이윽고 내 전신을 봉지처럼 감쌌지만,

그래도 여전히 풀려 허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어깨로 차례로 풀어나가, 풀어진 실은 봉지 안쪽에서부터 단단히 굳혀져갔다.

그리고 끝내 난 소멸했다.

 거기엔 커다란 텅 빈 누에고치만이 남았다.

 아아, 이제야말로 쉴 수가 있다. 석양이 누에고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이것만은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는 내 집이다.

하지만 집이 생겼어도 이번엔 돌아갈 내가 없다.

 누에고치 안에서 시간이 멈춰졌다. 밖은 어두워졌지만, 누에고치 안은 언제나 황혼으로, 안쪽에서 비춰지는 저녁 노을색으로

붉게 빛나고 있었다.

 이 두드러진 특징이 그의 눈에 띄지 않을 리가 없었다. 그는 누에고치가 된 나를 철로 건널목과 레일 사이에서

발견했다. 처음엔 화를 냈지만, 곧 신기한 물건을 주웠다고 생각했는지 호주머니 속에 집어넣었다.

잠시 그 안에서 데굴데굴 구른 후, 그의 아들 장난감 상자 속으로 옮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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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wann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