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구치 이치요의 <일기>

2015. 7. 29. 12:30 from Reading




누군가의 집에서 모두 모였을 때 무라사키 시키부와 세이 쇼나곤의 우열을 논한 적이 있다.

대부분이 '시키부, 시키부' 하며 시키부를 극구 칭찬했다. 확실히 그건 맞는 말일 것이다.

세이 쇼나곤은 정말 측은한 사람이다. 명문집안의 자손이라 사람들에게 귀한 대접을 받았겠지만,

모든 여자라는 인간은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라 확실한 후견인도 없고 해서 그대로 영락하고 말았다.

그래서 쓰라리고 괴로운 일이 많았던 것 같다.

 궁중에 들어간 쇼나곤은 중궁의 총애를 받아 '여기 이런 사람이 있다' 라는 것을 알리게 되었고.

 "향로봉의 눈은?"

 하고 묻는 질문에 즉석에서 백낙천의 시를 근거로 대답하여 중궁께서 주렴을 올리고 얼굴을 보이게 했다.

그 재치가 뛰어났다는 것이 일반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다.

 세이 쇼나곤은 자기 독자적인 생각으로 판단한 뒤 행동에 옮길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이렇게 해라. 이렇게 하는 편이 낫다'고 가르쳐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던 것이다. 

 여기에 비해 시키부는 부친의 교육도 받았고, 또 손위 형제도 없어 편한 동생 역할도 하며 살았을 것이다.

말하자면, 부잣집 딸로 태어난 그녀는 구김살 없이 자라나 명문가의 처녀로 출가했다고 볼 수 있다.

쇼나곤 쪽은 자존심은 강한데 생활형편이 넉넉지 못해, 언동을 통해 나타내지 않는 한 아무도 알아주거나 인정하지 않았다.

 무라사키 시키부는 천태종의 일심삼관이라는 것을 체득하고 있었다. 세이 쇼나곤도 불교는 배웠던 것 같은데

감정의 높낮이가 심한 사람이어서 달과 같은 깨달음의 경지까지는 도달하지 못한 것 같다.

 쇼나곤이 애석하다는 건 이런 경우를 뜻하는 것이다. 재능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올 수 있겠지만, 

덕이란 것은 노력하고 키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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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Swann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