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눈과 곤충 겹눈의 차이를 비교해 보면, 그것은 고화질 스크린으로 만들어진 반 톤짜리 연판과 신문 사진 인쇄에 쓰이는 조악한 스크리닝 사진의 차이와 같다. 고골의 시각과 보통 독자들, 보통 작가들의 시각 차이가 그 정도라고 할 수 있다. 고골과 푸시킨이 등장하기 전 러시아 문학은 반소경이었다. 문학이 인지한 형식은 이성에 의해 규정된 윤곽을 벗어나지 않았다. 자신의 색깔은 없었고,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장님 같은 명사와 개를 연상시키는 형용사의 조악한 조합에 불과했다. 파란 하늘, 녹색 나뭇잎, 아름다운 검정 눈동자, 잿빛 구름 등이다. 노란색과 보라색을 처음 발견한 것은 고골이다(그다음으로는 레르몬토프와 톨스토이가 있다). 일출의 하늘이 창백한 녹색일 수 있고, 흐린 날 눈이 푸른색으로 빛날 수 있다는 것은 18세기 프랑스 문학의 엄격한 색 체계에 익숙한 '고전적' 작가에게는 이교도의 난센스로 들릴 수도 있다. 묘사의 예술이 수 세기 동안 얼마나 발전했는지 알려 주는 증거로 예술적 시력의 변화를 들 수 있다.


생애 마지막 10년 동안 고골은 '죽은 혼' 속편에 고집스럽게 집착했다. 그는 무에서 삶을 창조해 내는 마술 같은 마술 같은 능력을 잃었다. 하지만 반복할 만한 힘은 남아 있었기에 그의 상상력은 준비된 재료만 있으면 됐다. 1권에서처럼 완전히 새로운 세상을 만들 수는 없지만 같은 직물을 이용해서 다른 패션 스타일로 디자인을 재조합할 수는 있다고 생각했다. 1권에서는 발견할 수 없었던 뚜렷한 목적의식을 도입해서 그것이 새로운 동력으로서 1권에 소급적인 의미를 부여하게 만드는 것이다.

고골이 처해 있던 상황적 특성은 차치하고라도 그가 빠져 있던 망상이 문제였다. '예술이 무엇인가?' '작가의 임무는 무엇인가?' 유의 질문을 던지기 시작하면 그 작가의 수명은 끝난 것이다. 고골은 조화와 고요를 불어넣어서 아픈 영혼들을 치유하는 것을 문학의 목적으로 삼기로 했다. 치료는 설교라는 강한 약 처방을 포함하고 있었다. 


도스토옙스키에 대해 나는 다소 난처하고 곤란한 입장이다. 모든 강의에서 나는 문학이 나를 흥미롭게 한다는 관점, 다시 말하면 불후의 예술, 천부적 재능이라는 관점에서 문학에 접근한다. 이렇게 보면 도스토옙스키는 위대한 작가가 아니다. 훌륭한 유머가 번득이긴 하나 문학적 진부함이라는 황무지를 지닌 평범한 작가에 불과하다.


예술적 시각의 진화라는 측면에서 보면 도스토옙스키는 아주 흥미로운 현상이다. 어떤 작품이든, 예를 들어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유심히 살펴보면 어떤 자연 배경도, 감각적 지각에 관련된 어떤 것도 발견할 수 없다. 풍경이 있다면 그것은 사고, 도덕의 풍경일 뿐이다. 그의 세계에서는 날씨도 존재하지 않고 따라서 사람들의 옷차림도 중요하지 않다. 도스토옙스키는 상황과 윤리적 갈등, 심리적 반응과 내면적 번뇌를 통해서 인물을 형상화한다. 어떤 인물의 외모를 한 번 묘사하고 나면 그 인물이 등장하는 장면에서 더 이상은 외모에 대한 언급을 하지 않는 구시대적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예술가적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톨스토이의 경우, 늘 마음속으로 등장인물을 연구하면서, 이 순간 혹은 저 순간에 어떤 몸짓을 차용할 것인지 정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도스토옙스키 특유의 자질이 또 있다. 그는 러시아의 위대한 극작가가 될 운명을 부여받았으나 어쩌다 길을 말못 들어서서 소설을 쓰게 된 사람처럼 보인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늘 내게 가지가 제멋대로 뻗어 있는 연극, 소도구와 무대 소품이 딱 필요한 만큼만 갖춰져 있는, 물기 젖은 둥근 컵 자국이 남아 있는 동그란 식탁과 햇빛 같은 효과를 주기 위해 노랗게 칠해진 창문, 그리고 스태프가 서둘러 가져와서 털썩 내려놓은 듯 보이는 관목이 있는 연극을 연상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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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을 대하는 또 다른 방법을 소개해 보겠다. 가장 간단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자세일 수 있다. 만일 어떤 책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그 작가가 쓴 것과는 다르게 혹은 좀 더 나은 방식으로 사물을 보고 묘사하는 것을 상상해 봄으로써 예술적 즐거움을 찾는 것이다. 평범하고 거짓되고 비속한(포실러스츠, 이 단어를 꼭 기억하기 바란다) 독자라 해도 무슨 상인가를 수상한 이류급 소설에 대해 욕을 퍼부으면서 짓궂지만 건강한 즐거움을 만끽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여러분이 좋아하는 책은 숨이 턱턱 막히는 전율 또한 선사할 수 있어야 한다. 실용적인 방법을 하나 제시하겠다. 문학, 진정한 문학은 심장이나 뇌(영혼의 위라고 할 수 있는)에 좋다는 물약 삼키듯 단숨에 들이켜 버리면 안 된다. 문학은 손으로 잘게 쪼개고 으깨고 빻아야 한다. 그래야만 손바닥의 오목하게 파인 가운데에서 풍겨 나오는 달콤한 향을 음미할 수 있다. 그것은 아삭아삭 씹어서 조각난 상태로 혀 속에서 굴려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가치를 가진 진귀한 향기를 감상할 수 있다. 그리고 이렇게 부서지고 쪼개진 부분들이 다시 머릿속에서 하나로 통이뢰면서 당신이 시간을 투자한 작품 전체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다.


교육자가 아니라, 교육 이론으로 무장한 이들이 만든 끔찍한 교과서들을 본 적 있을지 모르겠다. 아니, 틀림없이 봤을 것이다. 그런 이들은 책의 맥락 안에서 이야기하지 않고, 그저 책에 대해서만 떠들어 댄다. 그런 이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어느 위대한 작가의 가장 중요한 열쇠는 '단순성'이라고 말이다. 교육자가 아니라 교란자들이다. 그런 자들에게 호도된 남녀 학생들이 이런저런 작가들에 대해 쓴 답안지에는 종종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아마도 천진난만한 학창 시절에 읽었던 기억을 되살린 모양이지만) "그의 문체는 단순하다"거나, "그의 문체는 단순 명료하다" 또는 "그의 문체는 아름답고 단순하다", 그의 문체는 매우 아름답고 단순하다." 명심하라. '단순성'은 헛소리다. 어떤 훌륭한 작가도 단순하지 않다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라면, 신문 기사 나부랭이라면, 업턴 루이스라면, 우리 엄마라면, 다이제스트 잡지라면, 욕설이라면 단순하겠지만 톨스토이와 멜빌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모든 작가의 내면 어딘가에는 자신이 쓸 수 있을 만큼의 페이지 수, 그 숫자가 새겨져 있다는 말을 한 출판인으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내 숫자는 385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체호프는 좋은 장편을 쓰지 못했다. 그는 장거리보다는 단거리 주자였다. 그의 천재성이 여기저기서 뽑아낸 삶의 무늬를 그는 오랫동안 담아내지 못했다. 삶의 무늬는 단편을 만들어 낼 만큼의 길이에서 생생함이 유지됐고, 길게 이어지는 장편이 되기 위해 필요한 만큼 밝기와 섬세함을 유지하지 못했다. 그가 보여준 극작가적인 자질은 긴 단편을 쓸 수 있는 능력에 불과했다. 그의 희곡이 가진 단점은 장편을 쓰려 했을 때 드러난 단점과 같다. 


러시아 비평가들은 체호프의 문체와 단어 선택에는 고골이나 플로베르, 헨리 제임스가 가진 어떤 특별한 예술가적 천착이 결여되어 있다고 지적하곤 했다. 어휘는 빈약하고 단어 결합은 보잘것없어서 은빛 쟁반에 놓인 보랏빛 조각보 위, 주스 같은 동사, 등화유 같은 형용사, 박하주 같은 수식 어구는 도통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다. 체호프는 고골 같은 어휘 발명가는 아니다. 그래서 그의 문체는 늘 평상복 차림으로 파티에 간다. 때문에 체호프는 탁월하게 생기 넘치는 어휘 기술이나 극도로 세밀한 문장의 굴곡 없이도 완벽한 예술가 경지에 오를 수 있음을 보여주는 좋은 본보기다. 투르게네프는 풍경을 묘사하려 자리에 앉을 때 문구의 바지 주름에도 신경쓰고, 다리를 꼬고 앉을 때 드러나는 양말 색깔에도 공을 들인다. 체호프는 상관하지 않는다. 그런 디테일이 중요하지 않아서라기보다(어떤 작가들은 기질적으로 이러한 디테일을 매우 자연스럽고 중요한 것으로 여긴다) 기질 자체가 어휘 발명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문법적 실수도, 맥 빠진 신문체 같은 문장도 개의치 않는다. 초보라도 똑똑하기만 하면 충분히 피해 갔을 법한 우를 범하고, 어쩌다 마주친 평범한 인물, 평범한 단어에 만족하지만, 체호프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산문의 대가라고 자부하는 수많은 작가들을 월등히 능가하는 예술미를 선사해주었다. 이것이 체호프 예술의 마법이다. 희미한 불빛으로, 낡은 담장과 낮은 구름 중간 정도 될 듯한 잿빛으로 모든 어휘를 한결같이 비추어 주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각양각색의 어조, 번뜩이는 재치, 인색해서 더 예술적인 성격 묘사, 생생한 디테일, 인생의 쇠락, 이 모든 체호프적 색채는 각도에 따라 색이 변하는 단어의 신기루에 둘러싸이고 번져 더욱 짙게 채색된다.




Posted by Swann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