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은 속이며 악몽은 종입니다. 먼저 꿈에 대해 말하고, 다음에 악몽에 대해 말하겠습니다.

최근에 나는 심리학 책을 다시 읽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모든 심리 서적들은 꿈의 메커니즘이나 주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꿈이란 단어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설명하겠습니다. 하지만 내가 원했던 것, 즉 꿈을 꾼다는 사실이 얼마나 이상하고 놀라운 것인지에 대해서는 그 어느 책도 이야기하지 않고 있습니다. 


스페인어로 악몽은 '페사디야pesadilla' 입니다. 하지만 그 이름은 너무 상쾌한 냄새가 납니다. 여기서 '이야illa'라는 축소형 어미는 이 단어의 힘을 빼앗고 있습니다. 악몽을 일컫는 다른 언어는 보다 강한 발음이 납니다. 그리스어로 악몽은 '에피알테스ephialtes' 입니다. 에피알테스는 악몽을 야기하는 악마입니다. 라틴어에는 '인쿠부스incubus'란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악몽을 일으키면서 잠자는 사람을 누르는 악마입니다. 독일어로는 아주 흥미로운 단어인 '알프alf'가 있습니다. 아마도 악몽을 야기하는 악마인 개구쟁이 요정 엘프와 엘프가 초래하는 고통을 의미하는 말인 것 같습니다. 또한 세계 문학사에서 악몽을 꿈꾼 위대한 작가 중의 하나인 드 퀸시가 보았던 글미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푸셀리 혹은 퓌슬리(이것이 그의 진짜 이름입니다. 그는 18세기 스위스 화가입니다)라고 불리는 화가의 그림으로 '악몽'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습니다. 그 그림에는 한 여자가 누워 있습니다. 그런데 잠을 깨면서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왜냐하면 자기 배 위에 까맣고 작은 못된 악마가 누워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괴물이 바로 악몽입니다. 퓌슬리는 그 그림을 그리면서, '알프' 라는 단어와 엘프의 고통을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에머슨은 도서관을 보고, 마법에 걸린 수많은 책들이 있는 마법의 방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부를 때에만 잠에서 깨어납니다. 우리가 책을 열지 않으면, 그 책은 글자 그대로 기하학적인 종이 더미, 즉 수많은 것 중의 하나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책을 열면, 그 책은 독자를 만나게 되고, 미학적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 심지어 동일한 독자가 같은 책을 읽었다 하더라도 그 책은 변하기도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바뀌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헤라클레이토스트의 강입니다. 그는 어제의 인간이 오늘의 인간이 아니며, 내일의 인간이 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쉬지 않고 바뀌고 있으며, 하나의 책을 읽을 때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읽을 때마다, 그리고 그것을 다시 읽을 때마다, 작품을 고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품도 헤라클레이토스의 변하는 강입니다. 


한 작가, 아니 모든 사람들은 무슨 일이 자기에게 일어나든지, 그것이 유용한 수단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특정한 목적을 위해 그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술가의 경우에 더욱 그렇습니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것, 심지어는 수치와 장애와 불행을 포함한 모든 것은 점토로서, 즉 예술의 재료로 주어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을 받아들여 이용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는 고대 영웅들의 음식을 다루는 어느 시에서 수치와 불행과 불화를 말했던 것입니다. 그런 것들은 우리가 변형하도록 우리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이 처한 비참한 상황으로부터 영원하거나 영원하려고 소망하는 것을 만들어내야 합니다. 




Posted by Swann_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