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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탄불Istanbul / 오르한 파묵

Swann_ 2015. 6. 22. 20:01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상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과, 자신이 나폴레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사이의

차이는 행복한 몽상가와 불행한 정신분열증 환자 사이의 차이이다.

다른 세계를 상상하지 않고, 다른 정체로 분하지 않고 살지 못하는 '정신분열'의 사람들을 나는 아주 잘 이해한다.

하지만 정신분열증 환자들이 두 번째 세계의 포로가 되고, 복귀할 수 있는 행복하고 건전한 어떤

'진짜' 세계가 없기 때문에 나는 그들에게 연민을 느끼며 (몰래) 얕본다.


어린 시절의 이스탄불은 흑백사진처럼, 두 가지 색의, 반쯤 어두운 회색의 장소였고,

또 그렇게 기억한다. 음침한 박물관 집의 반쯤 어두운 곳에서 성장했음에도 불구하고,

집 안을 좋아하는 데는 이것이 한몫을 했다. 골목들, 거리들, 먼 마을들은 마치 흑백의 갱 영화에서 그러한 것처럼

위험한 곳으로 비쳐졌다. 어둠이 빨리 깔리는 이른 저녁을, 삭풍에 떠는 잎사귀 없는 나무들을,

가을을 겨울로 연결하는 날에 검은 외투와 재킷을 입고 반쯤 어두운 골목에서 종종걸음으로 귀가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것을 좋아한다. 낡은 아파트들의, 돌보지 않고 칠을 하지 않아 이스탄불 고유의 색으로 변한

허물어진 목조 저택의 벽은 내가 좋아하는 어떤 슬픔과 바라보는 즐거움을 불러일으킨다.


보스포루스에서 노니는 즐거움이란, 거대하고, 역사적이고, 방치된 도시 속에 살면서

깊고, 힘차고, 변화무쌍한 바다의 자유와 힘을 당신의 마음속에서 느끼는 것이다. 보스포루스의 급류에서

빠르게 전진하는 여행객은 복잡한 도시의 더러움, 연기, 소음의 한가운데서 바다의 힘이 자신에게 전이되고,

그 모든 군중, 역사, 건물 속에서 여전히 홀로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느낀다.

도시 속에서 노니는 이 물은 암스테르담과 베네치아의 수로, 혹은 파리나 로마를 둘로 나누는 강과 비교될 수 없다.

이곳은 급류가 있고, 바람이 있으며, 파도가 일고, 깊고, 어둡다. 


어린 시절 이후 나는 항상 멀리 아파트, 사원의 돔, 언덕 사이로 보스포루스가 보이는 언덕에 살았다.

멀리서나마 보스포루스를 볼 수 있다는 것이 갖는 정신적 의미 때문인지 몰라도 이스탄불의 집에서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창문은 사원에 있는 미흐랍(교회에서의 제대, 유대 교회당에서의 제단 역할을 한다.

안락의자, 긴 의자, 의자, 식탁은 거실에서 항상 보스포루스가 바라다 보이는 위치에 보인다.


1950년대와 1960년대에 도시의 마지막 목조 해안 주택, 저택, 폐허가 된 목조 가옥들이 타서

허물어지는 것을 목격했던 나 같은 사람들은 불구경하는 재미뿐 아니라, 즐거움이 먼저였던 오스만 제국

파샤들과는 다른 정신적 고뇌 역시 품고 있었다. 서양 문명의 2류이며, 희미하고 빈곤한 모방을 위해서,

정당하게 상속자가 되지 못했던 거대한 문화와 문명의 마지막 흔적들이 이스탄불에서 가급적 빨리

사라지기를 바라며 죄책감, 의기소침, 질투의 감정을 느꼈던 것이다.


한 개인으로서뿐 아니라 공동체로서 우리는 모두 외국인이나 모르는 사람들이 우리에 관해

어떤 생각을 하는지에 대해 어느 정도 고민한다. 이 고민이 우리에게 고통을 주거나,

현실과의 관계를 흐리게 하여 현실 자체보다 더 중요한 차원에 이르면, 이는 우리에게 문제가 된다는 의미이다.

서양인의 눈에 나의 도시가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한 나의 관심은-수많은 이스탄불 사람들처럼-문제가 있으며,

한쪽 눈을 서양에 고정시킨 도시 작가들처럼 나도 이 문제로 인해 가끔 머리가 혼란스럽다.


발터 벤야민은 '산책자의 귀환'이라는 글에서 프란츠 헤셀의 '베를린에서의 산책'이라는 작품을 소개할 때

"만약 지금까지 쓰인 도시에 관한 묘사를 작가의 탄생지를 기준으로 나누면, 그 도시에서 나고 자란 작가들이

쓴 글은 아주 적다."라고 말한 바 있다. 벤야민에 의하면 외부에서 도시로 들어온 살마들을 흥분하게 만드는 것은

이국적이며 회화적인 모습들이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사람들이 가진 자신의 도시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자신의 추억들과 뒤엉켜 버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