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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튼: 소설을 둘러싼 일곱 가지 이야기 Le rideau:Essai en Sept Parties / 밀란 쿤데라

Swann_ 2015. 6. 22. 19:56




그녀는 몇 계단을 내려가서 철로 근처에 섰다. 화물열차가 다가온다. 

"예전에 수영을 하면서 물에 몸을 담그려고 할 때 느꼈던 것과 유사한 감정이 그녀를 사로잡았다……."

(얼마나 멋진 문장인가! 삶의 매우 짧은 마지막 순간, 극도의 심각함이 유쾌하고 일상적이며 가벼운 추억과 연결되었으니 말이다! 

죽음의 비장한 순간에도 안나는 소포클레스의 비극적인 행보와는 거리가 멀다. 

그녀는 추함이 아름다움 곁에 있고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이 공존하며 

수수께끼가 수수께끼로 남아 있는 산문의 신비로운 길을 떠나지 않는다.)

"그녀는 어깨를 구부리고 손을 앞으로 내민 채 열차 밑으로 떨어졌다."


-죽음의 아름다움 中



프란츠 카프카의 세 소설은 동일한 상황의 세 변주다. 

인간은 타인이 아니라 거대한 행정 조직으로 변한 세계와 갈등 관계에 놓인다. 

첫 번째 소설(1912년에 쓰인)에서 인간의 이름은 카를 로스만이며 세계는 아메리카다. 

두 번째 소설(1917년)에서 인간은 조셉 K이며, 세계는 그를 고소한 거대한 법정이다. 

세 번째 소설(1922년)에서 인간은 K이며 세계는 성에 의해 지배당하는 마을이다.

 카프카가 심리학에서 벗어나 상황의 검토에 집중하게 된 것은 

그의 인물들이 심리적으로 설득력이 없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심리적인 문제들이 배면으로 물러났음을 뜻한다. 

K가 행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건 아니건 간에, 그가 애지중지 키워졌건 고아원에서 길러졌건 간에, 

그가 큰 사랑을 받았던 아니건 간에, 이는 그의 운명이나 태도를 조금도 바꿔놓지 못한다. 

바로 이러한 문제들을 뒤집고, 인간의 삶에 다른 방식의 질문을 던지며, 

개인의 정체성을 다른 방식으로 인식함으로써 카프카는 과거의 문학뿐만 아니라 

그의 위대한 동시대인들인 프루스트나 조이스와도 구분된다.


-상황들 中



플로베르는 서른 살이다. 자신의 서정성의 번데기를 찢고 나올 딱 그 시기다. 

그가 자신의 인물들이 초라하다고 불평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열정을 위해서, 소설이라는 예술에 대한 열정, 

삶의 산문이라는 탐구의 장에 대한 열정을 위해서 바쳐야만 하는 제물이다.


- 개종에 관한 이야기中



도대체 나한테 뭐라고 말하든 무슨 상관인가! 

흥, 그 남자든 여자든 누구한테 영감을 받았든 간에 알베르틴은 알베르틴인 걸 말이다! 

소설은 여자를 남자로 바꾸고, 남자를 여자로 바꾸며, 진흙을 금으로 만들고, 일화를 드라마로 바꾸는 연금술의 열매이다. 

바로 이 신성한 연금술이 모든 소설가에게 필요한 힘을 만들어 주고 그들 예술의 비밀과 광채를 만들어주는 것이다!

 소용없는 짓이야. 나는 알베르틴을 가장 잊을 수 없는 여자 중 하나라고 생각하려 했으나 소용없는 짓이었다. 

사람들이 그 모델이 남자였다고 내게 은밀히 알려 준 이후로는 그 쓸데없는 정보가 컴퓨터 소프트웨어에 침투한 바이러스처럼 

내 머릿속에 콕 박혀 버리는 바람에 어쩔 수 없었다. 

한 남성이 나와 알베르틴 사이에 슬그머니 끼어든 이후로 알베르틴의 이미지는 뒤죽박죽이 되었다. 

그녀의 여성성이 파손되어, 내가 그녀의 아름다운 가슴을 감상하는 순간, 그 가슴은 평평하게 되어 버리고, 

고운 얼굴 위에 때때로 콧수염이 생기기도 하니 말이다.

 사람들이 내 알베르틴을 죽였다. 플로베르의 말이 생각난다. 

"예술가는 자신이 겪어보지 못한 후대의 사람들도 믿게 만들어야만 한다." 

이 말의 의미를 잘 이해해야 한다. 소설가가 우선으로 지키기를 원하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알베르틴이고, 또 아르누 부인이다.


-사람들이 내 알베르틴을 죽였다 中



 플로베르가 '부바르와 페퀴셰'의 초안을 투르게네프에게 이야기하자 그는 곧 그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다루라고 권했다. 

노거장의 훌륭한 충고였다. 사실 이 이야기는 짧은 형태로 쓰일 때에만 그 희극적 효과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길어지면 단조롭고 지루해지며 완전히 부조리해지기까지 한다. 하지만 플로베르는 계속 고집한다. 

그는 투르게네프에게 이렇게 설명한다. 

"(이 주제를) 짧게, 간결하고 가볍게 다룬다면 다소 재치 있긴 하지만 영향력도, 개연성도 없는 독특한 작품이 되겠지요. 

반면 세세하게 파고들고 발전시켜 간다면 이야기가 신빙성 있어 보일 테고 심각한, 심지어 끔찍하기까지 한 것을 만들어 낼 수 있어요."

 카프카의 '소송'도 이와 비슷한 예술적 내기 위에 만들어졌다. 

첫번째 장 (카프카가 친구들에게 읽어주었을 때 그들이 매우 재미있어했던 장)은 우스꽝스러운 단순한 작은 이야기, 

농담으로 이해될 수 있다. 

K라고 불리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 침대에 누운 채 아주 평범한 두 남자에게 체포된다. 

그들은 K에게 아무 이유도 없이 체포를 선포하고 K의 아침밥을 먹고 K의 침실에서 제집처럼 오만하게 행동하는데, 

그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워서 잠옷 차림의 소심하고 어수룩한 K는 어찌할 바를 모른다. 

나중에 카프카가 점점 더 어두운 빛을 띠는 다른 장들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오늘날, 

카프카의 친구들이 그토록 웃었다는 얘기에 놀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카프카는 (플로베르의 표현을 다시 쓰자면) '다소 재치 있는 독특한 작품'을 쓰기를 원치 않았다. 

그는 이 우스꽝스러운 상황에 더 큰 '영향력'을 부여하기를, 

'그 이야기를 믿는 듯이' 보일 수 있도록 '개연성'에 주의를 기울이기를, 

그렇게 해서 '심각한, 심지어 끔찍하기까지 한 것'을 만들어내기를 원했다. 

농담의 검은 밑바닥까지 내려가기를 원했던 것이다.


-농담의 검은 밑바닥까지 내려가기 中